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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고민

장미화원 2023. 6. 5. 19:03

 

 

 

 

 

 

 

 

 

 

 

이성계의 고민

 

 

 

 

 

이성계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를 지칭합니다(재위기간 : 1392년-1398년).

이성계의 본관은 전주이고, 이름은 성계이며 화령부(영흥)에서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습니다(1335년 10월 11일-1408년 5월 24일).

고려 시대에 무장으로 활동하면서 고려 말에 침입해 온 왜구를 물리치는 등 국가 방위를 위하여 크게 활약했습니다.

이 왜구 토벌을 기념하는 황산 대첩비가 세워지기도 했습니다(1380년 황산 전투).

 

1. 위화도 회군

이성계는 1388년 고려 말에, 명나라를 징벌하기 위하여 요동 정벌에 나섰고, 5월에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에 왔습니다.

당시에는 비가 많이 와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상황이었고, 요동성에 가더라도 군량이 부족할 것이 염려되어,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장수)에게 회군할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성계의 뜻은 거부되었습니다.

우왕이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이성계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위화도에서 회군을 했습니다.

이성계가 활동하던 고려 시대에는 왕조의 부패로 인하여 정도전 등과 같은 신진 사대부들이 새로운 왕조를 꿈꾸고 있었는데, 이성계는 이 개혁파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기는 했지만 고려 왕조를 전복시킬 생각은 없었는데, 왕의 명령을 어겨서 그 죄가 가볍지 않을 것이고 또 개혁파들이 이 틈에 그를 새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습니다.

이성계는 고려 왕조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고려 왕조를 배반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울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개혁파들의 주장이 너무 강하여 이성계는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새 왕조를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1392년에 이성계는 왕위에 올라 조선을 세웠습니다.

 

2. 아들 이방원의 정변

1398년,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1367년 5월 16일-1422년 5월 10일)이 정변을 일으켜 형제들인 다른 왕자들의 세력을 진압했습니다.

이성계는 이방원이 새로운 왕이 되려는 욕심으로 자신의 친형제들을 제압한 것에 몹시 화를 냅니다.

그러나 이방원의 의지가 너무 강력하여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양위를 하려고 합니다.

이방원은 자신이 왕위를 받지 않고 맏형에게 왕위를 받게 하여 맏형이 정종이 됩니다.

정종은 이방원이 맏형인 자신에게 왕위를 양보한 것은 왕위 계승 서열을 지켜서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덜 받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곧바로 이방원에게 왕좌를 물려줍니다.

1400년,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게 됩니다(재위기간 : 1400년-1418년)

 

3. 상왕과 태상왕

이성계는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고, 태종이 즉위한 후에는 태상왕이 되었습니다.

상왕에서 태상왕이 될 때까지 이성계는 이방원의 왕권 도전에 분노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새 왕조인 조선을 세우는 것이 옳은가라는 물음을 수없이 자신에게 한 후, 새 왕조를 세우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왕이 되기 위하여 많은 피를 흘린 것에 대하여 이성계는 죄책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끊임없이 용서를 비는 이방원에게 이성계는 왕으로서 더 이상 피를 흘리지 말 것을 당부하며 성군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이성계가 이방원을 용서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