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떠돌이 캐릭터의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은 1889년 4월 16일 영국에서 태어났고 1977년 12월 25일 스위스에서 사망한 인물로 배우, 코미디언, 영화감독, 음악가로 활동했습니다. 가수인 아버지와 연극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아마도 부모로부터 연예인의 기질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부모는 가난하고 또 이혼까지 해서, 그는 다복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인 그의 아버지가 주선하여 찰리는 1898년 경 아동 극단에 입단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코믹 연기를 했습니다.

찰리는 1903년 경에는 '셜록 홈스' 연극에서 꼬마 급사로 출연하여 호평을 받았고, 1908년에는 프레드 카노 극단에서 주정뱅이나 건달 같은 인물들을 코믹하게 연기하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1910년에 그는 극단에서 주역을 맡아 미국 순회공연도 갔습니다. 이때부터 찰리는 미국 공연에 관심을 가지고 할리우드에서 배우 인생을 살았습니다.

찰리는 1914년 '생활 벌기'라는 영화에서 콧수염, 외알 안경, 중절모, 프록코트 차림을 하고 사기꾼 분장으로 등장했습니다. 이후 그는 떠돌이(the tramp)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트램프, 즉, 떠돌이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계층의 한 인물로 그의 가장 유명한 캐릭터입니다. 이 인물은 찰리의 영화에 흔히 등장합니다. 그는 떠돌이 기믹이라는 캐릭터로도 영화에 등장했는데, 이때 그의 모습은 통 크고 아주 헐렁한 바지, 짧고 꼭 끼는 상의, 대나무 지팡이, 아주 작은 모자, 칫솔 모양의 콧수염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캐릭터로 등장한 것은 웃기려면 제대로 웃겨야 한다는 그의 소신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찰리는 1914년 직접 감독을 한 영화 '사랑의 20분'을 발표했는데, 이 후로 그는 일주일에 거의 영화 한 편씩을 찍었습니다. 그는 영화감독을 하면서 주연으로도 자주 출연했습니다. 특히 '틸리의 무너진 로맨스'는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찰리는 '모던 타임스' , '황금광 시대', '서커스' 등의 영화들에서 유머와 감동을 결합한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의 관객들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부잣집 신사나 콧대 높은 여인, 차별하는 경찰관 등을 영화에서 당하는 인물들로 설정했는데, 이것이 찰리의 영화를 특징짓습니다.

찰리가 배우로 등장하는 영화들은 큰 인기를 얻었지만, 그가 영화감독으로 제작한 1923년 '파리의 여인'이라는 영화는 흥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관객들은 그를 영화감독보다는 코미디언으로 더 인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후 그는 코미디언으로 영화에 몰두하기로 했습니다.

찰리의 인기가 높아지자 그를 모델로 한 인형이나 담배, 만화 등 각종 상품들이 만들어졌고, 또 그를 흉내 내는 대회도 자주 열렸습니다. 그러나 1928년 경부터 영화계에서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의 시대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는 그의 연기 방향을 바꾸어야만 하는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찰리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음성이나 대사를 사용하지 않고 몸짓으로만 코미디와 감동을 표현했는데, 이 몸짓 연기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위기가 그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영화계를 떠나려 했지만 떠나지 않고 무성영화 '시티 라이트'를 발표하여 유성영화의 녹음기술을 무시하였습니다. 이 영화의 시사회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참석했고, 이 영화로 찰리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다재다능하여 영화배우이면서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고 또한 자신이 감독한 영화에 음악을 작곡하여 삽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몸짓 연기에 희극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당시의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인간의 본성문제를 상기시켰습니다. 그래서 그의 연기 인생은 지금까지 전 세계 관객들의 박수를 받고 있으며 영화 제작자들과 배우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늘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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