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갑부 오나시스에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였던가?

 

아리스토틀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는 1906년 1월 20일,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서 그리스인 부모로부터 태어나 1975년 3월 15일 프랑스에서 사망한 선박 사업가였습니다. 이 그리스 사람은 1923년 아르헨티나로 가서 그곳에 정착하여 무역업과 해운업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족이 소규모 선박 사업을 운영하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본 영향도 있습니다.

 

<아리스토틀 오나시스, 사진 출처 : 아래 링크>

https://www.gettyimages.com/photos/onassis-aristotle?assettype=image&family=editorial&page=4&phrase=onassis%20aristotle&sort=mostpopular

 

 

 

 

오나시스는 뛰어난 경영 능력과 기업가적인 통찰력으로 국제 선박 운송업에서 성공한 비즈니스 맨이면서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에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회사는 특히 화물 운송과 선박 급유 서비스에 집중하면서 재산을 불렸습니다. 1957년에는 항공 분야에도 눈을 돌려 그는 항공회사 올림픽 항공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오나시스는 그의 사업적인 성공만큼이나 여인들과의 사랑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1946년 티나 니아코스(아시나 리바노스라고도 불림)라는 여성과 결혼하고 1960년에 이혼했습니다. 이 여성의 아버지가 그리스의 해운왕이어서 오나시스는 장인의 도움으로 국제적인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갖추게 되어 선박 사업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나시스는 티나 니아코스와 이혼하기 직전인 1959년부터 1968년까지 소프라노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와 연인 관계로 지냈습니다. 이 여자 오페라 가수는 그녀보다 28세 연상인 사업가와 결혼하여 재산도 있고 또 세계적인 성악가로도 유명하게 되자 갑부인 오나시스를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 칼라스가 본 남편과 이혼을 한 후에도 오나시스는 그녀와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만 했습니다.

오나시스는 마리아 칼라스와 사귀면서 동시에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의 처제인 리 라지윌(Lee Radziwill)과 사귀었습니다. 리 라지윌은 내연남인 오나시스와 결혼하고 싶어서 그녀의 친언니인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 1929-1994)에게 오나시스를 소개했습니다. 이때 오나시스는 재클린에게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녀와 1968년 재혼했습니다. 오나시스는 재클린과의 결혼을 발표하기 바로 전까지도 그녀의 동생인 리 라지윌과 함께 파티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리 라지윌은 그녀의 친언니가 자신의 남자를 빼앗아가서 극심한 배신감에 분노하며 일생 동안 언니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오나시스와 재클린, 사진 출처 : 아래 링크>

https://www.gettyimages.com/photos/onassis-aristotle?assettype=image&family=editorial&page=5&phrase=onassis%20aristotle&sort=mostpopular

 

 

 

 

재클린은 오나시스와 결혼 후에 사치가 심하여 오나시스의 마음을 많이 상하게 했습니다. 사실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키도 작은 오나시스와 그녀가 결혼한 것은 그의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클린 본인은 오나시스가 그의 명성을 더 높이기 위하여 대통령 부인이었던 자신과 결혼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나시스는 재클린에게 실망하여 마리아 칼라스를 다시 만나고 또 여러 여성들을 계속 만났습니다.  

오나시스는 재클린과 이혼하려고 했으나 1975년 기관지 폐렴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이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나시스의 재산이 10억 달러가 넘어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유산을 분배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나시스는 재클린에게는 그의 재산을 한 푼도 주지 않고 그의 딸 크리스티나(1950-1988)에게 전 재산을 준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오나시스의 아들 알렉산더(1948-1973)가 일찍 사망하여 그는 아들에게 유산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재클린은 오나시스의 부인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의 유산 분배에 불만을 품고 소송을 걸어 1억 2천5백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오나시스와 오랜 시간 연인 관계였던 마리아 칼라스에게도 오나시스는 한 푼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 소프라노 가수가 오랫동안 오나시스와 사랑을 한 것을 인정하여 오나시스의 여동생이 그녀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오나시스는 선박 운송 외에도 석유, 금융, 부동산, 통신 등 다양한 업종에서도 성공하여 세계적인 갑부가 됨과 동시에 많은 여성들과의 사랑에도 힘써 여러 이야기들을 남겼습니다. 그가 많은 배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그에게는 그의 배들이 정착할 수 있는 항구도 많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말을 몸소 철저히 실천한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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